미국의 고율관세정책으로 중남미 전략적 중요성 확대
우리 정부는 중남미 지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중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발효, 한·브라질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체결, 한·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타결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남미 국가 간 경제협력 틀을 마련하고, 무역 확대와 투자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다. 한병길 한·중남미협회 회장, 홍성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아프리카중동·중남미팀장, 박민경 코트라(KOTRA) 전문위원 등 전문가 3인은 ‘통상’과 대담에서 중남미가 인구 6억 명 이상의 거대 시장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 한국 무역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 정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방위적으로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어, 미국 상호 관세 예외로 분류된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중남미와 협력은 왜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한병길 “중남미는 전 세계 매장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리튬, 전 세계 매장량의 약 6분의 1에 당하는 니켈 및 희토류를 보유하고 있다. 구리, 철광석 등 주요 핵심 광물의 공급지다. 첨단 기술 산업과 제조업에 필요한 필수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다. 중남미는 인구 6억4800만 명, 국내총생산(GDP) 6조7285억달러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다. 한국에는 미국, 중국, 일본 교역 의존도를 줄여주는 대체 시장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브라질, 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는 경제 규모와 성장 잠재력이 크다. 중남미는 세계 최대 식량 및 농산물 순 수출국이므로 한국의 식량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협력이 필요하다.”
홍성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미·중 갈등 격화, 미국 정부의 통상정책 등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매우 심화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은 기존과는 다른 형태, 예를 들어 소다자 간 경제 블록 중심로 재편될 수 있다. 한국이 중남미와 협력을 통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남미는 특히 광물, 에너지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의 에너지 및 자원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정부의 관세정책으로 교역 다변화 중요성이 커졌다.
박민경 “2024년 한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6838억달러의 대세계 수출액을 달성했다. 하지만, 주요 국가와 품목에 대한 의존이 여전히 높은 것이 우려된다. 지금처럼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남미 국가와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무역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고율관세가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 관세를 최대한으로 줄일 방법은 미국의 상호 관세에서 예외로 분류된 USMCA 특혜를 활용하는 것이다. USMCA 재협상 등 여러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와중에도 멕시코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다.
이에 따라 최근 멕시코 소재 공장과 협업 가능성을 문의하는 우리 기업이 늘고 있다. 또한 4월 2일 자로 미국에서 발표된 국가별 차등 상호 관세표에 따르면, 베트남이나 라오스 등 기존 글로벌 제조업 기지에 비해 중남미 주요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율을 받았다. 만약 이 내용이 현실화할 경우, 전반적인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 중남미의 전략적 이점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중남미 국가가 미국, 유럽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점은 글로벌 기지로서 장점을 더한다.”
홍성우 “한국의 대미 직접 수출이 타격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남미의 전략적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남미는 광물 같은 단순한 자원 공급지 이상으로, 글로벌 리스크를 분산하고 공급망을 탄력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행정부에서 불법 이민과 펜타닐 이슈로 멕시코는 USMCA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미 수입관세가 부과될 뻔했다. 이는 여전히 멕시코 무역에 대한 리스크로 남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2026년에 북미 3개국 간 USMCA 재협상을 앞두고 있어 멕시코를 둘러싼 통상 환경은 밝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멕시코의 부정적 전망은 장기적으로 중남미 내 타 국가에는 기회로 인식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멕시코 이외에도 타 중남미 국가가 대미 수출을 위한 잠재적 전진기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남미와 경제협력을 위해 우리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
한병길 “상생과 혁신을 중심으로 포용적인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 중남미 각국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협력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첨단 제조 산업과 협력하거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중미 지역에서는 중소기업을 위한 중소 규모의 투자, 기술이전 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중남미 지역의 경제 인프라를 개선하고 삶의 질 향상을 지원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민경 “윈윈 관계를 구축한다는 비전이 중요하다. 한국은 기술, 교육, 제조업 등에서 경쟁력이 있고, 중남미는 자원과 시장을 제공할 수 있다. 양국이 가진 부분을 바탕으로 공동 연구를 수행할 때 지속 가능한 협력이 나올 수 있다. 국가별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고, 민관 학연의 협업을 실행 방안으로 삼아야 한다.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한 안정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학계와 연구 기관의 공동 연구, 민간 협업을 통한 실질적인 결과 도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홍성우 “미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자원 개발-가공-수출’을 연결하는 가치 사슬을 만들 필요가 있다. 중남미는 리튬, 니켈, 구리 등 핵심 광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USMCA, CAFTA-DR(도미니카 공화국·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미국 간 FTA), 미·칠레 FTA, 미·페루 TPA(Trade Promotion Agreement·무역촉진협정) 등 미국과 FTA 또는 TPA를 체결한 국가가 많다. 향후 이러한 협정을 바탕으로 미국과 경제협력이 강화될 시나리오에 대비해 중남미가 대미 수출을 위한 거점 국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사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남미에서 원자재를 확보해 현지에서 중간재를 가공하고, 이것이 미국 수출로 연계되는 공급망 루트를 전략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경제 안보 협력에도 부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타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의 차별화된 경쟁 전략은.
홍성우 “중남미 국가와 경제협력을 모색하는 데 있어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에 비해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신뢰 가능한 교역 및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고유한 전략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압축적 경제 발전 경험과 ODA 수원(受援)국·공여국 경험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로서, 개도국의 성장 단계와 제약 요인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중남미 국가는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과 전략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다. 한국의 경제 발전 경험과 ODA를 타 국가와 차별화된 경제협력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ODA 일부를 협력의 기초 단계 구축 및 한국 기업의 진입 장벽 완화 도구로 활용한다면, 이후 민간 기업의 후속 진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해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대체로 대규모 차관과 국영기업 중심으로 인프라 건설을 일괄 패키지로 추진하는 방식이 관찰되며, 현지 수용성보다 규모와 속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 민관 협력은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있으나 구조적 한계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 참여 유인 부족, 민간의 독립적 확장성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결과적으로 차별화된 전략의 핵심은 중남미 국가 내 수요를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해당 분야에서 ODA와 한국의 대외 전략을 연계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박민경 “유엔(UN) 경제위원회에서 근무할 때 사무 총장이 항상 혁신 발전의 성공 사례로 한국을 언급하곤 했다. 그만큼 현지에서는 발전에 대한 수요가 높고, 동시에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 정보기술(IT), 전력 송전망 등의 비교 우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에너지 효율화와 IT가 결합한 스마트 도시, 수처리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각국과 지역별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 적합해 보인다.”
한병길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IT 강국으로, 중남미 국가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 도시, 전자 정부, AI 및 빅데이터 활용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크다. 또 한국의 선진 교육 시스템과 직업 훈련 프로그램, 이러닝 분야의 중남미 국가와 협력은 중남미 지역의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K팝, K드라마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중남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문화 교류와 창의 산업 분야에서 협력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중남미와 협력에서 걸림돌이 있다면.
한병길 “중남미는 전통적인 유럽 규범과 중남미 문화가 접합된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개인적인 관계와 신뢰가 중요하므로, 언어 및 문화 이해를 통한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남미는 단기적인 성과 보다는 장기적인 관계와 지속 가능한 협력을 중시한다. 또 중남미 국가는 각기 다른 법률 체계와 규제를 두고 있어, 이를 이해하고 준수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일부 중남미 국가는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세심한 리스크 연구가 필요하다.”
홍성우 “최근 KIEP에서 수행한 연구에서 중남미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우리 기업을 면담한 결과, 이들은 몇 가지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 업종에 걸쳐 공통적으로 중남미 내 치안 불안, 환율 변동에 따른 경영상의 어려움, 현지 인력 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남미 통화는 국내 또는 전 세계 경제 상황에 따라 환율이 크게 변동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과거와 동일한 생산과 판매 실적을 올리더라도 환율이 변동하면 달러나 원화로 환산한 기업 수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재무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박민경 “실제 중남미에 진출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한 번 거래가 성사되면 그만큼 안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시기가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단했던 기존의 장벽과 판이 흔들리고 신규 진입자가 진입할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남미 영향력을 어떻게 전망하나.
한병길 “중남미는 풍부한 천연자원, 특히 리튬, 니켈 및 구리 같은 핵심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전기차 산업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남미는 세계 최대 식량 및 농산물 순 수출국으로서 글로벌 식량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남미에서 한국이 경제·통상 분야와 방산 분야에서 활동 공간을 확보할 경우, 향후 미·중 갈등 속에서 중남미가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민경 “중남미는 가능성이 무한한 지역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브라질, 글로벌 공급망 핵심 지역인 멕시코와 중미 지역은 앞으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도, EU 등도 최근 중남미 주요국과 경제협력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영향력은 중남미 주요국이 통합된 목소리를 낼 때 더욱 확대될 것이다. 얼마 전 온두라스에서 개최된 중남 미카리브국가공동체(CELAC)에서 33개국이 모여 단합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특히 멕시코·브라질 양국 정상 간 무역 협력 강화를 약속한 만큼 앞으로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홍성우 “중남미 국가는 기존 G7(주요 7개국) 같은 선진국 중심의 글로벌 지배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소다자 협의체를 활용하여 집단적 협상력을 높이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의 이질성 및 미·중 갈등이 자국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달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정치 이념, 외교 노선 차이, 경제구조 이질성, 미국과 중국의 이중 압박과 균형 전략 측면으로 인해 중남미가 참여하고 있는 협력체 내에서 일치된 의견 및 정치·경제적 통합이 쉽지 않을 수 있다.”